지니어스

* 지난 주 지니어스에서 홍진호가 우승했다. 홍진호의 팬으로서 참으로 기쁜 일이었다. 

* 그런데 홍진호의 우승을 보면, 왠지 영웅 이야기의 모습 같아보여서 재밌었다. 
인터넷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홍진호의 우승을 기뻐했던 것은, 그가 게임 실력으로 우승했다는 점이다. 친목질 하고, 연합을 형성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홍진호는 자신의 게임 실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지니어스가 두뇌 게임하는 프로인 만큼, 게임 잘 하는 사람에게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 이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실제로 방송에서는 게임 잘 하는 사람보다는, 연합을 잘 하는 사람들이 뭉쳐서 소수를 배격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친목질 하는 사람들은 안 좋은 무리로 여겨졌고, 반면에 연합을 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만으로 게임 하는 홍진호는 이들에게 혈혈단신으로 맞서는 인물의 위치에 들어섰다. 그렇지 않아도 다수에 의해 억압당하는 소수의 싸움에서는 소수가 응원을 받는 그림인데, 여기에 소수가 더 정당한 명분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이 친목질을 하던, 연합을 하던 개의치 않고, 이들을 모두 실력만으로 압도하다니 얼마나 통쾌한 이야기인가? 
거기에 홍진호의 등장도 꽤나 극적이었다. 초반에 홍진호는 허당으로 통했다. 게임 센스는 있어서 뭔가 열심히는 하는데 결과를 제대로 도출하지 못하는 인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김구라와의 데스메치에서 각성하고-20개의 카드 암기는 임팩트가 강했다- 오픈패스에서 압도적인 광경을 만들어내며 존재감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이후 홍진호는 게임 잘 하는 인물로 확실하게 각인되어 자신만의 흐름으로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은 친목질의 일인자로 평가받는 김경란이었기에, 마치 대마왕과 격돌하는 인상을 주는 흐름으로 흘러갔다. 어버버-각성-대마왕과의 결전 이라는 이야기가 형성된 것이다. 

* 역시 이야기가 있어야-표면적이든 아니든- 몰입이 잘 된다. 
하지만 사실 홍진호에게는 두 가지 유리한 점이 있었다. 
1) 홍진호는 홀덤 경험이 있다. 
홍진호는 프로게이머라는 타이틀로 출연했다. 홀덤 출신으로는 차상문이 출연했다. 하지만 사실 홍진호 또한 홀던 경험이 있다. 인터뷰에서 홍진호는 프로게이머 은퇴 이후 홀덤 플레이어로 전환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한 경험은 당연히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인디언 포커와 같은 경우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김구라와의 데스메치에서 "경험이 없는데도 잘 하시네요"라는 말은 이런 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2) 구조적으로 후반으로 갈 수록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힘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치력은 사람이 많아야 더욱 많은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한 회 마다 한 명씩 탈락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에는 게임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후반에는 유리해진다. 정치력이 좋은 김구라가 초반에 포스를 발휘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대선게임은 김구라의 능력을 잘 보여줬다). 그리고 이준석 같이 게임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초반에 연합의 힘으로 떨어진 것만 봐도, 초반에는 정치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찌어찌 초반을 넘긴 홍진호에게는 후반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회가 갈 수록 정치력이 발휘될 여지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게임 실력이 뛰어난 이들은 대부분 초반에 떨어졌기 때문에, 후반에는 홍진호보다 게임을 잘 하는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니 후반에는 홍진호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홍진호에게 운이 좋았던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데스메치의 게임이 홍진호에게 유리한 형태였다는 점이다. 그가 치뤘던 데스메치들은 인디언 포커와 전략 윷놀이. 게임 능력이 극도로 강조되는 게임들이다. 정치력이 중시되는 연속 가위바위보를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그에게는 다행이었다. 이러한 경우 오히려 데스메치에 가는 것은 유리할 수가 있다. 데스매치를 통해 탈락시키고 싶은 사람을 저격할 수도 있고(차상문, 김구라가 그런 경우였다), 데스메치 만큼 가넷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도 없다(특히 가넷이 많이 축적된 후반에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데스매치 종목은 미리 공지가 안 되니 이걸 노리고 데스매치 갈 사람은 없기는 할 것이다. 
아. 참고로, 이렇게 썼다고 해서 홍진호의 우승을 폄하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홍진호의 팬으로서 나도 그의 우승이 기쁘다(왠지 어색하기는 하지만ㅋㅋ). 단지 그에게 유리한 점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도 모두 그의 능력이 전제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불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다. 

* 홍진호가 지니어스의 최대 수혜자라면, 김경란은 가장 많이 잃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이미지가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친목질에 정색이라는 평가로 많은 욕을 먹었다. 하지만 그렇게 인성이 나쁘다고 볼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그냥 김경란은 그릇이 작은 것이 아닌가 정도로 생각된다. 생각의 그릇이 작기 때문에 전체적인 것을 두고 보지 못하고, 그러니 이전에 자신의 행동과 지금의 자신의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며, 남의 행동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일관적인 평가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마음의 그릇이 작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안 되거나 자신에게 피해를 주면 곧바로 나타난다. 이것은 인성이 착하고 나쁜 것을 떠나서, 그냥 그릇이 작은 것이다. 그것이 게임 전략적으로도 나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릇이 작은 것이다(예를 들어, 11회에서 게스트가 잘못된 정보를 줬다고 정색하면서 노려보는 것은 전략적으로 좋지 않다. 그 게스트가 마음이 상해서 더 이상 올바른 정보를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김구라는 참으로 안타깝다. 
게임 탈락할 때도 진상을 부리고, 성의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깽판 부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승전에서는 너무 편파적인 입장을 취해서 보기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볼 이유가 없다면서 계속 홍진호를 까던데, 김구라는 자신의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아직도 교훈을 얻지 못했나. 인생에서 만나지 않을 것처럼 인터넷 방송에서 원색적으로 까다가, 나중에 공중파로 들어와서 그 사람들을 다시 다 만나야 했던 자신의 지난 날을 벌써 잊은 것인가. 김구라는 아무래도 자기성찰이 약해보인다. 뭐- 자기성찰이 약해보이는 것을 떠나서, 결승전에서 그의 모습은 꽤나 졸렬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불편했다. 

* 성규의 탈락이 아쉬웠다. 
6회 이후 남은 멤버 중에서 홍진호와 싸울만한 수준의 게임 능력은 성규가 유일했던 것 같다. 거기에 성규는 방송적인 재미도 잘 챙겨줬기 때문에, 성규가 결승전에서 홍진호와 격돌했으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아쉽다. 지니어스 후반의 재미는 홍진호-성규-이상민 덕에 잘 채워지지 않았나 싶다.  

* 여러 미진한 점이 있다고 해도, 지니어스는 참 잘 만든 방송이었다. 
일단 컨셉 자체가 좋았다. 능력자들을 모아서 두뇌 게임을 하는 방송은 다른 곳에서는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집도 좋았다. 5-6시간 씩 녹화하고, 게임도 굉장히 오랫동안 진행되는데, 그것을 1시간에서 1시간 30분 분량으로 편집해서 관객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복잡한 게임의 룰을 단시간 안에 설명하고, 진행되는 게임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음악이 정말 좋다. 정말 좋은 타이밍에 딱 맞는 느낌의 음악을 계속 깔아주는 것은 정말 귀를 즐겁게 해줬다.

* 시즌2에서는 노홍철이 나온다. 
오옷. 기대된다. 무한도전에서의 노홍철은 사기에 능하며, 다른 멤버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기에 꽤나 기대가 된다. 

* 하여간, 그 동안 지니어스를 참 재밌게 봤다. 
재밌는 방송을 만들어준 제작진에게 감사하다. 11월의 시즌 2도 기대한다. 

* 아. 그리고 11회 끝난 직후 어떤 놈이 디씨 기타 프로그램 갤러리에서 어떤 놈이 스포라면서 이미 김경란이 우승했고, 지금 가편집도 끝났다며 글을 올려놨었는데, 그 놈 어디 갔어 ㅡ_ㅡ

by 어떤날 | 2013/07/17 01:29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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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레드불중독자 at 2013/07/17 02:59
저도 그글 보고

홍진호가 또 준우승이야! 어흐흐흐흑 ㅠㅠ 했었는데.
Commented by 어떤날 at 2013/07/17 10:42
그 글 보고 참 멘붕에 빠지고 실의에 빠졌죠.
거기에 결승전에 예고된 종목만 보면 홍진호가 유리해보였는데,
어떻게 김경란이 이길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덕분에 인터넷에 떠도는 스포는 믿을게 못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ㅋ
Commented by 나생 at 2013/07/17 09:06
저도 그글 보고 김경란이 우승이라니!!! 분노하면서 결승전 안봤고 결과듣고 재방으로 봤습니다.;;
시즌2는 빨라야 내년에 할줄 알았는데 11월이라니.. 진짜 지니어스 인기가 좋았나봐요. ㅋㅋㅋㅋ
Commented by 어떤날 at 2013/07/17 10:43
그러게요. 생각보다 빠르게 시즌2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니어스 재밌게 본 사람으로는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요ㅋ
그러고보면 tvN에서 좋은 방송을 참 많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
케이블에서는 독보적인 것 같아요.
Commented by daswahres at 2013/07/29 19:54
저때 김구라가 인터넷에서 욕 많이 먹었지요. 직업의 귀천 은근히 따진다고..
아무리 대본에 있다 하더라도 좀 순화해서 말을 했어야 좋았는데 말이지요. 개인적으로 안타까웠습니다.
Commented by 어떤날 at 2013/08/02 23:43
그러게요.
조금만 더 깔끔하게 말한다면 듣는 입장에서 더 편할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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